조선의 불교회화와 폴 고갱: 먼 북소리 +리뷰들+

조선시대의 불화에는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이것은 조선의 불교회화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특징이다. 이것은 고려의 화려하고 섬세한 기교에서의 아름다움이나 통일 신라 시대의 조형적 자연스러움의 표현에서 오는 아름다움과는 그 성격의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이것은 차라리 폴 고갱의 후기인상주의 회화들과 그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 할 것이다.


여태까지 한국의 불교회화들이 불교 고유의 정신성에 기초했다지만, 그것은 불교의 특유의 교리에 입각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불교의 회화는 불교 자체의 교리와 정신성과는 조금 동떨어진 성격을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 작품들이 불교 자체를 부정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들은 분명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와 교훈을 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이러한 소재가 아닌 표현에 관련된 것 이다.


조선 후기 불교 회화에서 보이는 강렬한 원색의 사용과 대비, 기존 시대들의 형태 표현에 비교하여 볼 때 부자연스럽고 조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형성은 감상자로 하여금 자칫 조선 후기의 불교 회화를 싸구려로 취급해 버리기 쉬운 위험성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 시대, 특히 고려의 불교회화 비교하여 조선의 불교회화는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하기 불가능 한 불쾌한 미학, 즉 숭고를 아주 직설적인 원시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기존 시대의 표현 미학과 차이를 보인다.


조선 후기 불교 회화의 직설성은 그야말로 종교 탄생 근원인 ‘세계에 대한 공포와 경외’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의 불교회화가 불교의 정신을 우아함과 기품을 통하여 표현하려 하였다는 점 과 비교된다. 특히 이러한 회화들과 조각상은 지금과 같은 박물관이 아닌 사찰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불교가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조선 시대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가 철저하게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세계에 국한되어 사후세계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멀어졌다면, 오히려 불교는 조선시대에 들어 이러한 종교의 토테미즘적 성향을 점차 강화시키며 토속신앙과 점차 가까워졌다. 절에 공양을 드리러 가는 시간이 보통 새벽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회화와 조각상 들이 신자들에게 어떠한 기분들 들게 하였을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마치 ‘마크 로스코’가 강연에서 이야기 했던 것 과 같은, 그러니까 ‘방문자로 하여금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설법하는 아미타불> 1828년 제작, 조선 후기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년




조선 후기 불교화만의 독특한 색채, 조형적 표현은 불교가 원시 종교가 지니는 기복신앙의 성향을 강하게 나타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부처는 이제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이상향으로서의 이상이 아닌 세계의 절대자로서 중생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군림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선 후기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어떤 시기에도 불교가 이렇게 원색적으로 기복 신앙적 성격을 가지지는 않았다. 모든 국가의 혼란기에 종교는 언제나 절대적인 신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 종교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한국 개신교가 기복 신앙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포교의 핵심으로 삼음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제1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와 흡사하다. 인간은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을 맞닥트릴 때 언제나 신을 찾는다. 이 신은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원초적인 모습의 신이다.

사실 이런 인간존재에 대한 무력감과 그에 따른 회의감은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후기 인상주의’의 대가 폴 고갱은 특히 원시문화의 종교성을 포착하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탐구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조형적 성격에 있다. 그는 전통적인 자연주의적 회화에서 벗어나 강렬한 색채와 인물의 도상적 배치에 중점을 두었는데 특히 위의 작품에서는 기존의 회화적 표현과는 대비되는 평면적 성격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고갱의 실험들은 이후 직접적으로 야수파와 표현주의를 거쳐 간접적으로는 앵포르멜과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까지 사상적인 영향을 미친다. 재밌는 사실은 원색적인 색채 사용과 대비, 인물의 도상적 배치와 자연주의적 환영성의 공간 재현을 포기한 평면에 대한 과감한 표현이 조선 후기 불교 미술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비록 형태적으로 고갱의 그림에서는 종교회화에서 나타나는 인물에 대한 뚜렷한 상징화 표현과 장식성이 나타나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 불교회화가 종교 특유의 숭고함을 전달하기 위해 오히려 일반적인 미학에서 과감히 멀어졌던 것과 고갱이 모더니즘의 물결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원시 문명에서 찾고 이를 자연주의적인 환영성의 표현 방법이 아닌 색채와 상징적인 도상적 배치로서 표현하여 감상자에게 기존의 ‘보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서 직관적인 이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 중시했다는 사실은, 두 이질적인 장르의 회화가 근본적으로는 같은 의도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이성으로서의 이해가 아닌 직관성으로서의 이해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인 몸부림이다. 그것은 종교로서 표현되기도 하며 예술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두 상이한 방법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성과를 보여주었는지는 아직도 생각 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형연 할 수 없는 세계를 적어도 인간이 인식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표상하였다는 점 은 분명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단지 우리가 이제까지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영원한 향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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